[커버스토리 | 이슈 플러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꽃피운 김영록 지사의 ‘RE100’ 6년 여정
이재명 정부 출범하자 대통령실 달려가 ‘전남 에너지 신도시’ 구상 설득
광주·전북 포함 ‘에너지경제공동체’ 구상, 전남 미래 100년 발판 마련해
전남도가 RE100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2020년 7월이다. 김영록 지사가 ‘블루 이코노미’ 비전을 제시하면서 에너지 분야 19개 과제에 RE100 전용 시범산업단지 조성,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공공 ESS 구축 등을 넣은 것이 그 시초다. 전남이 가진 햇빛과 바람으로 에너지를 만들고, 이를 미래 첨단 산업으로 연계하는 그림을 민선 7기 시작부터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RE100(Renewable Energy 100)’은 기업들이 사용하는 모든 전력을 화석연료가 아닌 햇빛, 바람, 물, 지열, 생물 등 자연에서 반복적으로 얻을 수 있는 자원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로 조달하자는 ‘에너지 대전환’ 의미를 담고 있다.
초기에는 전남·광주·전북 묶어 ‘RE300’ 제안
2020년이면 국내에서는 RE100 개념조차 생소했던 때다. 비록 전남도가 전국의 43.8%에 해당하는 6873㎞의 서남해안 해안선과 광활한 갯벌, 온화한 기후와 높은 일조량, 드넓은 대지 등을 가졌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햇빛과 바람으로 에너지를 생산할 시설은 물론 에너지를 수요처에 공급할 전력계통, 재생에너지 관련 전문기관 등 미흡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여기에 천문학적인 공공재정과 민간투자, 관련법과 제도의 제·개정, 산업단지 지역 농어민을 포함한 이해당사자 동의 등이 있어야 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러나 RE100을 선도하겠다는 김 지사의 의지는 확고했다. 2020년 7월, 김 지사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탄소중립 지방정부 실천연대 발족식’에서 “재생에너지 발전량 1위인 전남의 신재생에너지를 100% 활용해 ‘RE100 전용 국가산업단지’ 조성에 앞장서겠다”며 “전남 해남에 구현할 ‘탄소제로에너지 빌리지 조성 시범사업’을 통해 미래형 도시를 선도하겠다”고 밝힌다.
전남의 역량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김 지사는 2021년 2월 24일, 국회에서 당시 이낙연 당 대표 등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호남 초광역 에너지공동체 RE300 구축’ 용역 착수보고회를 개최, 광주와 전북까지 엮어 호남 전체를 ‘에너지경제공동체’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힌다.
‘호남 RE300’은 에너지 수요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고, 200% 초과 생산된 전력은 최대 에너지 수요처인 수도권 등에 공급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용역 발주서에는 △신재생에너지 전용 전력 공급을 통한 에너지 자립 △수도권으로의 전력 공급을 위한 ‘에너지고속도로’ △수도권 전력 판매에 따른 이익을 도민과 공유하는 시스템 설계 등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개념을 담고 있었다.
김 지사와 전남도의 적극적인 움직임에도 당시 문재인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했다. 수도권 중심의 사고, 관행에 익숙한 행정 시스템 등이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김 지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2021년 1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RE100 산업벨트 구축을 통한 지방소멸 위기 대응 토론회’에 참석, 2030년까지 소비전력 100%를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생산하겠다며 기업도시 ‘해남 솔라시도’에 RE100 산업벨트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내놓는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데이터센터 등을 유치해 에너지를 대규모로 사용하는 기업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정부의 재생에너지 기반시설 지원 △기업 유치를 위한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 △참여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등을 제시했다. 전남 서남부권으로 기존 데이터센터가 이전하거나 신규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정부 더딘 움직임에도 데이터센터 유치 전력
김 지사와 전남도는 재생에너지를 공급받을 데이터센터 유치를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다. 2022년 5월 2일, 전남도청에서 ‘글로벌 데이터센터 클러스터 조성 기획 용역’ 착수보고회를 열어 타당성 조사에 나선 데 이어 ‘글로벌 데이터센터 클러스터 조성 기본구상(안)’을 마련했다. 이어 전남테크노파크 등 전문기관이 참여한 ‘글로벌 데이터센터 클러스터 조성 추진단’을 구성했다.
마침내 2023년 8월 24일, 국내 데이터센터 선도기업인 삼성물산(주), ㈜LG CNS 등이 참여한 가운데 민·관이 함께 해남 솔라시도 160만여㎡(50만 평)에 국내 최대 1GW ‘데이터센터 파크’를 조성하는 투자 및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한다. 2037년까지 10조원대 민간 자본을 투자해 40메가와트(㎿)급 데이터센터 25개 동을 조성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2024년 8월 8일, 김 지사는 국회 ‘좋은 정책 포럼’ 발족식에서 전남의 햇빛·바람으로 발생한 이익 중 일부로 에너지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구상도 밝힌다. 아울러 ‘에너지고속도로’ 설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주요 고속도로 건설비 50%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처럼 에너지 고속도로도 재정 상황이 어려운 한전에만 맡길 게 아니라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재생에너지 관련 인허가권 이양 등을 담은 전남특별자치도법 제정, 전력 다소비기업 지방 이전을 위한 대책 수립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김 지사는 재생에너지 관련법과 제도 정비 필요성을 실감하고 2024년 9월 에너지고속도로 정부 지원을 담은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시작으로 ‘해상풍력 특별법’, ‘영농형 태양광 특별법’, ‘분산에너지법’ 제정과 개정에 총력을 기울인다. 2024년 12월 16일에는 전남도청에서 전문가들과 ‘RE100 선제 대응 전략회의’를 갖고 △발전사업자를 위한 ‘재생에너지 발전특구’ △기업을 위한 ‘RE100 솔루션’ △도민을 위한 ‘재생에너지 기본소득’ 등을 통해 전남 RE100을 세계로 확산한다는 RE100 추진 방향을 제시한다.
2025년 2월, 미국을 방문한 김 지사는 미국 투자그룹 스톡 팜 로드의 자회사 퍼 힐스(FIR HILLS)와 세계 최대 규모인 3GW 이상의 ‘AI 슈퍼클러스터 허브’ 조성 협약을 체결한다. 해남군 산이면 구성지구 일원 120만 평에 2028년까지 7조원, 2030년까지 8조원을 투자해 AI 컴퓨팅 인프라, 데이터센터, 대규모 ESS 등을 구축하기로 한 것. 3GW는 미국 북버지니아의 2.5GW나 중국 베이징의 1.8GW를 훨씬 뛰어넘는 규모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여전히 미흡한 전력계통 확충, 통신과 용수 등 필수기반시설 구축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RE100 산업단지, ‘전남 대도약’ 현실로 만들 것”
2025년 6월,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자 김 지사는 가장 먼저 RE100 산업단지를 들고 나왔다. 7년 이상을 주장해왔지만, 제자리에 멈춰 있는 ‘재생에너지를 통한 미래 첨단 산업 유치’를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 7월 1일, 김 지사는 대통령실을 찾아 강훈식 비서실장, 김용범 정책실장을 면담하고, 첨단산업 및 RE100 융복합단지와 그 배후의 ‘AI 에너지 신도시’를 중심으로 한 ‘서남권 인구 50만 에너지 혁신성장 벨트’를 제안한다.
이어 8월 20일에도 김용범 실장을 만나 RE100 산업단지와 공공 주도 재생에너지 개발 등 에너지 정책 핵심 현안을 건의한다. 김 실장이 ‘RE100 산업단지 조성계획’과 ‘차세대 전력망 구축 계획’을 발표하며 전남을 그 중심지로 지목하자 후속 조치에 나선 것.
이러한 김 지사의 노력은 마침내 10월 1일, SK와 세계적인 AI 기업 ‘오픈AI’가 함께 전남에 AI데이터센터를 건립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된다. 여기에 삼성SDS 주도 컨소시엄이 10월 21일 사업비 2조5000억원 규모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 공모에 단독 참여하면서 사실상 해남 솔라시도가 그 대상지로 정해졌다.
민간 자본이 투입될 AI데이터센터와 민간·공공이 합작하는 국가AI컴퓨팅센터가 동시에 들어서게 되면서 전남은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혁신산업지역으로 거듭나게 됐다. 새 정부 출범 5개월도 안 돼 이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것은 김 지사와 전남도의 만반의 준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남은 현재 전국 1위(444.2GW)의 재생에너지 발전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2038년 국가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용량(121.9GW) 목표치를 두 배 이상 웃도는 규모다. SK와 오픈AI가 전남을 AI데이터센터 부지로 선정하고, 삼성SDS 컨소시엄이 국가 AI컴퓨팅센터 후보지로 전남을 선택한 것은 필연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재생에너지를 대량으로 필요로 하는 기업들은 전남을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RE100 산업단지는 산업화시대에 소외됐던 전남도가 새롭게 미래 100년을 그릴 수 있는 발판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