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이 간다] 로컬+퀵턴, MZ 스타일 ‘단짠 여행법’

춘천 ‘닭갈비’ 대신 ‘감자축제’ 찾는 MZ세대, ‘대전=성심당’ 로컬 공식 만들어
자기만의 ‘애정 스토리’ 경험 중시하는 MZ 취향 겨냥한 ‘밍글링 투어’가 뜬다

서울에서 2시간 걸려도 올 만했어요.

김밥이 이렇게 재밌는 소재가 될 줄은 몰랐어요.

아침 일찍 서울에서 김천 김밥축제를 찾은 전효진씨의 말처럼, 경북 김천의 사명대사공원은 아침 9시부터 활기로 가득했다. “함 먹어봐라, 반할 끼다.” 김밥을 건네며 웃는 상인의 사투리가 울려 퍼지고, 그 냄새를 따라 걷다 보면 인증샷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인구 13만 명의 소도시 김천이 전국 ‘핫플’로 떠오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김밥’이다.

김밥축제를 상징하는 캐릭터 ‘꼬달이’ 앞에서 인증샷을 찍으려는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며 북적인다. 박가남 인턴기자
김밥축제를 상징하는 캐릭터 ‘꼬달이’ 앞에서 인증샷을 찍으려는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며 북적인다. 박가남 인턴기자

원래 김천은 김밥과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하지만 ‘김천’과 ‘김밥천국’. 두 단어의 우연한 연결에서 김천시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도시 전체가 김밥천국이 되어보자.” 도시의 이름에 새 의미를 부여한 김천 김밥축제는, 지역이 스스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성공 방식을 보여줬다. 김밥 만들기 체험 부스, 김밥 경연대회, 김밥 피크닉존이 마련된 거리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인파로 가득했다. 지역 주민들은 ‘우리 동네가 이렇게 북적이긴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SNS에는 ‘#김밥천국’, ‘#김천여행’, ‘#로컬축제’ 같은 해시태그와 관련 숏폼 콘텐트가 빠르게 확산됐다.

이렇듯 멀리 떠나지 않고도 지방에서 충분히 특별한 경험을 찾는 ‘뉴 로컬리티(New Locality)’가 MZ세대의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교통비나 시간을 아끼는 실용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가까이서 나를 찾는 감성’이 깔렸다. 짧은 시간에 알차게 다녀오는 ‘퀵턴(Quick-turn) 여행’이 확산된 것도 같은 이유다.

김밥 한 줄에 로컬 한 스푼

“서울에서 김밥 먹으려면 그냥 김밥집 가면 되잖아요. 굳이 말하자면 김밥 성지순례? 그래서 바로 내려왔어요.” 서울에 거주하는 전효진씨는 “요즘 여행은 멀리 가는 게 아닌 ‘맥락’을 느끼는 것”이라며 방문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올해 김밥축제는 작년보다 한층 ‘MZ 친화적’으로 진화했다. 지난해 모든 프로그램이 사명대사공원에 집중돼 숨 돌릴 틈이 없었다면, 올해는 공간을 성격별로 분산해 동선을 넓혔다. 관람객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나뉘며 여유 있는 체험이 가능해졌고, 각 부스에서 즉시 결제가 가능해지는 등 ‘대기 없는 경험’을 시도했다.

김밥 공급 방식 역시 달라졌다. 지난해 1만 줄 한정 수량이 오전 중 소진됐던 반면, 올해는 현장에 ‘김밥 공장’을 설치해 안정적인 공급을 이어갔다. 편의성에서도 세심한 조정이 있었다. 지난해 친환경 뻥튀기 그릇의 취지는 좋았지만 실용성에 아쉬움이 있었던 반면, 올해는 다회용기 대여·반납 시스템을 도입하고 개인 용기를 가져오면 직접 김밥을 담아주는 방식이 확산됐다. 

김천 김밥축제에서는 방문객들이 직접 빙고판을 들고 참여하는 ‘김밥 퀴즈 이벤트’가 열리며 현장에 활기가 더해졌다. 박가남 인턴기자
김천 김밥축제에서는 방문객들이 직접 빙고판을 들고 참여하는 ‘김밥 퀴즈 이벤트’가 열리며 현장에 활기가 더해졌다. 박가남 인턴기자

이러한 변화는 MZ세대의 ‘가치소비’와 맞닿는다. 환경을 고려하면서도 편리함을 포기하지 않는 소비 경험을 제공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변화는 ‘짧고 밀도 있게’ 즐기려는 ‘퀵턴 여행’ 트렌드를 반영한다. 요즘 여행은 며칠 머무는 장기 체류보다, 하루 혹은 반나절 동안 로컬의 분위기를 읽는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경주에서 놀러 온 예비신부 김소은씨는 ”하루 만에 다 보고 먹을 수 있어 ‘퀵턴여행지’로 딱이다”라고 말했다. 예비신랑 박현수씨는 “줄이 길어도 공연이나 게임이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며 “알차게 하루짜리 여행을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만족했다.

김천 김밥축제에 이어 구미 라면축제, 대구 떡볶이 축제가 MZ세대의 이목을 끌고 있다. 얼핏 보면 동네 분식 메뉴에 불과한 음식들이다. 그러나 MZ세대는 이 익숙한 음식에서 새로운 경험과 지역성을 읽어낸다. 기성세대가 당연하게 지나쳤던 일상적 소재를 ‘축제’라는 형식으로 재해석하며, 도시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방식이다. 

김천시청 관광진흥과 안유희 주무관은 “남녀노소 누구나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관람객이 주인공인 축제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지방 축제가 지닌 다소 보수적인 형식과 의전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막식이나 내빈 중심 행사를 과감히 없애고 ‘오직 김밥’이라는 본질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안 주무관은 이번 축제에서 특히 두드러진 MZ세대의 참여 문화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MZ세대는 ‘참여’와 ‘기록’을 즐기는 세대라는 점을 확실히 느꼈다”며 “단순히 축제를 관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블로그·인스타그램·유튜브를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경험을 공유하는 모습이 의미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김밥축제 공식 캐릭터 ‘꼬달이’ 굿즈의 조기 품절을 예로 들며 “단순히 귀여워서가 아니라, 그 굿즈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핫한 축제에 다녀온 사람’이라는 상징이 됐다”며 “기록과 인증이 MZ세대의 참여를 자극하는 핵심 요소임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안 주무관은 “이번 김밥축제를 통해 지역 관광자원의 잠재력을 다시 확인했다”며 “김밥을 매개로 ‘김천’이라는 도시의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알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김밥쿠킹대회 우승작이 전국 CU 편의점에 출시된 것처럼, 축제의 추억이 일상 속에서도 이어질 수 있도록 팝업스토어 운영이나 관광지 상권 연계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나아가 축제 콘텐트를 관광 콘텐트로 확장시켜 김천을 기억하고 다시 찾고 싶은 도시로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MZ의 신(新) 로컬 정복기

흔히 로컬이라고 하면 지방, 시골, 전통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MZ세대가 생각하는 로컬의 이미지는 다르다. 그들에게 로컬은 ‘유니크’하고 ‘힙’한 경험을 뜻한다. 나주 배, 청송 사과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농산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그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체험’ 자체가 ‘로컬리티’가 된다. 

예를 들어, 강원도 춘천은 오랫동안 ‘닭갈비의 고장’으로 알려져 왔지만, 이들은 지역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ITX 청춘열차를 타고 모여든다. ‘춘천 감자축제’는 ‘감자빵’으로 유명한 카페 ‘감자밭’이 주최한 민간 주도형 행사다. ‘감자 캐기 대회’와 ‘감자런’ 등 소규모 프로그램으로 구성됐지만, 티켓이 조기 매진될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축제에 참여했던 20대 김주영씨는 “축제 이후 이제는 춘천 하면 닭갈비보다 ‘감자빵’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떠오르는 또 다른 여행지는 대전이다. 대전은 한때 ‘노잼 도시’로 불렸지만, 지금은 오히려 ‘꼭 가봐야 할 지역’으로 주목받는다. 그 중심에는 대전의 대표 브랜드 ‘성심당’이 있다. 성심당은 시그니처 메뉴인 ‘튀김소보로’로 이름을 알렸지만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성심당이 선보인 ‘과일 시루 케이크 시리즈’는 재료를 아끼지 않은 풍성함으로 ‘오픈런’ 행렬을 만들었고, 이를 맛보기 위해 당일치기로 대전을 찾는 소비자도 늘었다. 이로써 ‘할 것 없다’던 대전은 ‘빵의 도시’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었고, ‘대전=성심당’이라는 로컬 공식이 자리 잡았다.

짧은 일정으로 지역 명소를 둘러보는 ‘퀵턴 여행객’들은 빵지순례 명소 대전에 들러 갓 구운 빵을 고르며 ‘소확행’을 즐긴다. [중앙포토]
짧은 일정으로 지역 명소를 둘러보는 ‘퀵턴 여행객’들은 빵지순례 명소 대전에 들러 갓 구운 빵을 고르며 ‘소확행’을 즐긴다. [중앙포토]

경기도 수원의 행궁동 역시 MZ세대가 새롭게 정의하는 로컬리티의 대표 사례다. 이곳은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지역임에도, 방문자들은 전주나 경주 같은 ‘한국적 정서’를 체감할 수 있다. 아기자기한 골목과 소품숍, 개성 있는 카페들은 ‘찐 로컬 여행’ 감각을 제공한다. 더불어 SBS <그해 우리는>, tvN <선재 업고 튀어> 등 인기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지며 ‘콘텐트 성지순례’의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수원시에 거주하지는 않지만 드라마 애청자로서 방문한 홍유나씨는 “<그해 우리는> 촬영지를 직접 걸으니 드라마 속 장면이 떠오르고, 친구와 함께 사진도 남기면서 온종일 즐길 수 있었다”며 “평소 관심 있던 콘텐트를 따라 지역을 경험하는 재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처럼 MZ세대는 단순히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자신이 애정한 스토리가 담긴 장소를 찾아 경험한다. ‘무형의 콘텐트’가 로컬의 의미를 확장하는 시대를 만들어가는 셈이다.

그 흐름은 ‘축제’뿐 아니라 ‘스포츠’에서도 나타난다. 최근 야구 인기가 다시 높아지면서, 타 지역 구장을 찾아가는 ‘야구 퀵턴 여행’이 젊은 세대의 새로운 여가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응원팀의 원정 경기를 보기 위해 주말 하루를 비워 지방 구장을 찾는다.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창원NC파크, 부산 사직구장 등은 경기 외에도 지역 특색이 살아있는 먹거리와 굿즈로 관중을 끌어모은다. 직장인 김모(29)씨는 “야구가 여행의 목적이 되기도 하고, 지역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며 “경기 후 바로 KTX를 타고 올라오면 피곤하지 않아 자주 간다”고 말했다.

로컬 여행과 더불어 퀵턴 여행의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유튜브와 SNS에서는 “위스키 사러 일본 당일치기”, “포켓몬 굿즈 사러 한·중·일 당일치기” 등 단기간에 특정 목표를 달성하는 여행 콘텐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여행업계는 ‘오래 머무르기’보다 ‘짧고 강렬한 경험’을 제공하는 퀵턴 여행에 주목하고 있다.

‘개인 맞춤(DIY)’ 여행상품 인기몰이

조일상 하나투어 홍보팀장은 “해외여행이 MZ세대에게 일명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며 “여행이 더 이상 큰 결심이 필요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 속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는 점에서 퀵턴 여행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금요일 저녁 출발해 월요일 새벽 귀국하는 상품이 직장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며 “연차를 소진하지 않고도 상하이, 칭다오, 홍콩 등 근거리 지역에서 효율적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어 ‘시간 대비 만족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이어 “앞으로 쇼핑, 콘서트, 전시회, 스포츠 경기 등 특정 테마를 중심으로 한 ‘특화 여행’과 이동 효율성을 극대화한 상품이 더 확대될 것으로 본다”며 “하나투어도 이에 맞춰 항공·호텔을 한번에 예약하는 ‘에어텔’, 고객이 취향에 맞춰 원하는 대로 항공과 호텔을 DIY하는 ‘내맘대로’ 상품 등 새로운 형태의 여행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조 팀장은 “최근 MZ세대에게 ‘좋은 여행’이란 비슷한 취향의 또래 여행자들과 어울리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나다움’을 찾는 시간”이라며 “2030세대 전용 패키지 ‘밍글링(mingling) 투어(또래 여행자들이 함께 어울리며 여러 문화를 체험하는 여행)’를 비롯해 MZ세대의 선호와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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