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심층분석]
전남은 어떻게 ‘에너지 수도’로 도약했나

김영록 지사, 2019년 ‘블루 이코노미’ 발표하며 전남의 새천년 비전 제시
전문가 “해상풍력 없었다면 전남 데이터센터 클러스터 생각도 못했을 것”

AI 시대를 맞아 ‘아껴둔 땅’ 전라남도가 ‘에너지 수도’로 도약하고 있다. 사진은 2020년 10월 13일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2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서 발표하는 장면. 청와대사진기자단
AI 시대를 맞아 ‘아껴둔 땅’ 전라남도가 ‘에너지 수도’로 도약하고 있다. 사진은 2020년 10월 13일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2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서 발표하는 장면. 청와대사진기자단

“섬, 해양, 하늘, 바람, 천연자원 등 전남의 풍부한 블루자원(Blue Resources)을 바탕으로 지역의 경제적 혁신성장을 만들 ‘블루 이코노미’라는 새 비전을 실현해 나가겠습니다.”

2019년 6월 26일, 김영록 전남지사는 ‘블루 이코노미’를 전남의 미래 새천년 비전으로 제시한다. 김 지사가 내놓은 블루 이코노미를 위한 5가지 전략은 △미래 글로벌 에너지신산업 수도 △남해안 신성장 관광벨트 구축 △세계적 바이오-메디컬 허브 구축 △미래형 운송기기 산업의 세계 중심지 육성 △은퇴 없는 스마트 블루시티 조성 등이었다.

여기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전략이 바로 ‘에너지신산업 수도, 전남’ 비전이다. 김 지사는 전남이 다른 지역보다 일사(日射)량과 바람의 질이 뛰어나다는 점에 주목했다. 햇빛과 바람이라는 전남의 천혜 자원이 만들어낼 신재생에너지가 대세가 될 것을 일찍부터 확신한 셈이다.

신안 앞바다에 8.2GW 해상풍력단지 계획 세워

김 지사는 당시로서는 과감하게도 8.2GW(기가와트) 규모의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신안 앞바다에 조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다. 1GW는 원전 1기 설비용량에 해당한다. 8.2GW는 원전 8기를 가동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전력량이다. 

블루 이코노미를 향한 김 지사의 첫 번째 행보는 인허가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정부부처를 공략하는 것이었다. 2019년 12월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을 만나 신안 일대 대규모 해상풍력 발전단지 조성에 필수적인 지원 부두와 배후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제4차 항만기본계획에 반영해줄 것을 건의한다. 곧바로 신안군, 한국전력, 전남개발공사 등과 단지 조성을 위한 협약을 체결한다. 그 결과 일단 1단계로 8.2GW 규모 가운데 3GW를 신안 임자도 30km 해상에 조성하기로 한다. 전남 해상풍력발전의 첫 발걸음이었다.

전남도 관계자는 이 협약이 중요했던 이유로 한전이 참여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이 3GW 규모 공동접속설비를 구축해 1.5GW는 직접 사업을 추진(사업비 11조원)하고 나머지는 추후 컨소시엄 구성 등을 통해 민간 발전사가 추진하도록 했다는 것을 꼽았다. 전력 생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통까지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전력계통을 갖췄다는 것이다. 이 협약에는 또 국내 풍력산업 생태계 조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국내 해상풍력 제조기업의 부품설비를 우선 사용하고, 발전수익 일부를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데 노력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김 지사는 당시 “어민과 주민의 생업과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주민 참여 등 개발이익 공유 방안을 구체화해 주민 수용성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다. 해상풍력 산업 부흥과 일자리 창출에 더해, 무엇보다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어민과 인근 주민들이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살핀 것이다. 김 지사의 치밀함과 추진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영록 전라남도지사가 2024년 8월 16일 목포 신항만 해상풍력 배후부지 현장을 해상풍력 시·군 단체장 및 관계자들과 둘러보고 있다. [사진 전라남도]
김영록 전라남도지사가 2024년 8월 16일 목포 신항만 해상풍력 배후부지 현장을 해상풍력 시·군 단체장 및 관계자들과 둘러보고 있다. [사진 전라남도]

2020년 1월, 김 지사는 해상풍력 전용 배후단지를 조성한 덴마크 에스비에르그 항을 찾았다. 덴마크를 찾기 직전 ‘제9차 국가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안군 일원 해상풍력단지 발전 설비용량(3GW 이상)을 반영해줄 것과 ‘제4차 항만기본계획’에 해상풍력 발전단지에 필요한 지원 부두(철재 부두 3만t급, 1선석) 및 배후단지(27만6000㎡) 조성사업을 우선 반영해줄 것을 중앙정부 등에 건의한 터였다.

김 지사는 전남의 해상풍력을 어떻게 이끌 것인지를 고민하고, 자신의 계획이 타당한지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 덴마크를 방문한 것이다. 덴마크는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의 풍력 터빈 제조기업인 베스타스를 보유하고 있다. 전력의 43%를 풍력발전으로 충당하는 등 재생에너지 분야 선진국이라는 점에서 전남의 롤 모델이 되기에 충분했다.

자신감을 얻은 김 지사는 이후 국회를 찾아 전문가들과 함께 포럼을 연다. 전남의 신안 해상풍력단지 조성 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정부의 송전망 확충, 에너지개발구역 지정, 지원 부두와 배후단지 조성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서다. 2020년 7월 국회에서 ‘해상풍력 산업생태계 조성 포럼’을 개최한 데 이어 당시 여당인 민주당의 핵심 관계자들을 만나 해상풍력 단지가 추진될 수 있도록 공동접속설비에 대한 국고 지원도 요청했다.

덴마크 등 유럽 해상풍력 선진국 찾아가 연구

김 지사는 이후 2000년 9월, 전남 신안지역 어민, 주민들과 함께 상생협약을 체결한다. 대부분의 대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이 지역주민과의 마찰 및 반대로 좌초돼 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김 지사는 민간 발전사 중심의 해상풍력발전 사업에 지역사회가 참여하는 ‘전남형 상생일자리 모델’로 추진한다. 현재 신안군이 ‘바람 연금’, ‘햇빛 연금’을 줄 수 있는 근간이 이때 마련된다. 

당시 상생협약에는 김 지사와 박우량 신안군수, 김길동 신안군 수협 조합장, 장근배 새어민회장 등이 참석했다. 2021년 2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신안 임자대교를 찾아 ‘지역균형 뉴딜투어 1호 행사’에 참석하는 등 전남의 세계 최대 규모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에 힘을 실어줬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말에 이르자 김 지사의 발걸음도 바빠진다. ‘해상풍력 산업생태계 조성 연구용역’에 착수한다. 2026년까지 조성될 목포신항 지원 부두 및 2단계 배후단지를 ‘제4차 항만기본계획’에 해상풍력 부지로 반영시킨 데 이어 기업 유치를 위해 이미 조성돼 있는 1단계 배후단지를 ‘해상풍력 특화구역’으로 지정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한다.

2021년 6월 덴마크의 베스타스, 씨에스윈드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전남도는 2022년 3월, 이보다 진일보한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한다. 이 협약식에는 아이너 옌센 주한덴마크대사를 비롯해 헨릭 앤더슨 베스타스 회장, 김성권 씨에스윈드 회장, 정세균 국무총리 등이 참석했다. 

베스타스와 씨에스윈드는 합작법인을 통해 국내 풍력타워, 블레이드, 터빈 조립을 위한 경쟁력 있는 생산시설 설립을 위한 사업을 물색하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2022년에 접어들면서 김 지사와 전남도는 위기에 봉착한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재생에너지가 아닌 원자력에 주목하면서 기후위기 이슈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지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전남의 해상풍력산업이 미래 방향성에 부합하고, 도민을 포함해 국민 모두에게 가치 있는 일”이라며, “전남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할 중차대한 임무”라고 여겼다.

덴마크, 노르웨이 기업과 협약 체결에 성공

2022년 11월, 산업통상부가 2030년까지 풍력 보급 목표를 연간 1.9GW로 설정하고, 태양광·풍력 발전량 비율을 약 87대 13에서 60대 40으로 조정한다는 내용이 담긴 ‘에너지 환경 변화에 따른 재생에너지정책 개선방안’을 발표하자, 김 지사는 이를 기회로 생각했다. 해상풍력 인허가 소요기간을 평균 5~6년에서 2년 10개월로 단축할 수 있는 ‘풍력발전 보급 촉진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정부 부처와 국회 설득에 나선 것. 재생에너지를 통해 수도권에 몰려 있는 기업의 지방 이전을 촉진하자는 아이디어도 적극적으로 내기 시작했다.

2023년부터는 ‘신안 해상풍력 집적화단지 사업계획(안)’을 정부에 제출하기 위해 속도를 낸다. 8.2GW 해상풍력단지 가운데 우선 1단계 사업인 4.1GW(12개 발전단지) 사업 계획을 공유하고, 의견 수렴에 나선 것. 집적화단지로 지정되면 해상풍력 발전량에 따른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REC) 최대 0.1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을 수 있다. 연 최대 600억원 정도 추가 수익이 가능해 주민소득사업, 공공·복지사업 등에 투자할 계획을 세운다.

김 지사는 2023년 11월, 국방부, 환경부, 행정안전부 등 정부 부처에 건의해 해상풍력 관련 규제를 철폐하는 데도 성공한다. 여기에 지방공기업의 타 법인 출자 한도를 기존 10%에서 25%로 확대해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해상풍력사업에 지방공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길도 열었다.

2025년 4월, 아시아·태평양 최대이자 세계 2위 규모인 ‘3.2GW 신안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산업통상자원부 신재생에너지 정책심의회를 거쳐 집적화단지로 지정됐다. 사진은 전남 신안 자은도에 건설된 SK 해상풍력 발전단지. [사진 전라남도]
2025년 4월, 아시아·태평양 최대이자 세계 2위 규모인 ‘3.2GW 신안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산업통상자원부 신재생에너지 정책심의회를 거쳐 집적화단지로 지정됐다. 사진은 전남 신안 자은도에 건설된 SK 해상풍력 발전단지. [사진 전라남도]

2024년 4월, 김 지사는 4년여 만에 다시 덴마크를 찾는다. 코펜하겐에서 세계 1위 터빈사인 베스타스, 세계 최정상급 해운회사인 머스크와 해상풍력 터빈 공장을 목포신항에 설립하는 투자협약(MOA)을 체결하기 위해서였다. 목포신항과 해남 화원산업단지에 베어링, 변압기 등 부품업체와 타워, 하부구조, 케이블 등 연관기업을 유치해 해상풍력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그리던 김 지사는 목포신항의 모델이 될 오덴세 항을 찾았다. 김 지사는 150여 해상풍력 관련 기업이 입주해 1800여 해상풍력·부품 기자재를 생산하고 있는 오덴 사항에서 목포신항을 아시아·태평양 해상풍력 허브로 조성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2024년 6월에는 덴마크와 함께 해상풍력 선진국인 노르웨이 발전사 ‘딥윈드오프쇼어’, 서부노르웨이응용과학대학 등과 ‘해상풍력 연구개발 및 인력양성 협력 업무협약’을 맺는다. 이 협약에는 목포대학교, 목포해양대학교 등도 참여한다. 선진기술과 전문 인력 양성 시스템을 지역대학과 접목하겠다는 김 지사의 의지였다.

2024년 8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남도가 찬성의견을 제출한 영광 칠해1·2, 신안 후광 해상풍력 발전 사업을 조건부 허가한다. 이에 따라 전남도의 허가 규모는 16GW에서 17.3GW로 늘게 된다. 전국(28.9GW)의 약 60%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어진 산업통상자원부의 ‘2024 공공주도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개발 지원 사업(수행기관) 공모’에서 여수시가 선정돼 신안군에 이어 지역 내 공공 주도 해상풍력 단지 개발이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김영록 지사가 해상풍력을 선점하고 이슈를 리드한 것은 탁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은 전남 신안의 해상풍력단지 공사 사진. [사진 전라남도]

새 정부 출범으로 ‘에너지 대전환’ 기회 맞아

2024년 12월, 국회 탄핵 소추 정치 일정 속에서도 김 지사의 해상풍력산업 구축을 위한 여정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됐다. 마침내 2025년 2월, ‘해상풍력발전 보급 촉진 및 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과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되면서 해상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기반의 에너지 대전환이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2025년 4월에는 아시아·태평양 최대이자 세계 2위 규모인 ‘3.2GW 신안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산업통상자원부 신재생에너지 정책심의회를 거쳐 집적화단지로 지정된다. 이를 계기로 여수, 고흥을 중심으로 한 동부권 13GW 해상풍력단지 등 전남 전역에 해상풍력 30GW 보급, 도민 에너지 기본소득 1조원 달성, 해상풍력연관 기자재 산업단지 조성, RE100(재생에너지 100%)을 필요로 하는 대기업 유치 등에 이르는 김 지사의 그림이 마침내 본격화된 것이다.

2025년 6월, ‘세계 해상풍력 허브로의 담대한 도전’을 주제로 여수엑스포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해상풍력 산업박람회에서 김 지사는 전남 서부권을 넘어 동부권 13GW 해상풍력 비전을 선포하고, 에너지 기본소득·기자재 공급망 구축 업무 협약 등에 나선다. 이어 산업통상자원부가 전남 서해안 해상풍력 7개 사업 2.6GW 규모를 허가함으로써 기존 허가받은 18.7GW까지 합쳐 21.3GW의 발전이 가능해졌다. 김 지사가 목표로 삼았던 30GW를 마침내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김 지사는 이 자리에서 “해남 AI 슈퍼클러스터 조성 등 전남에서 생산한 전력을 전남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를 실현하는 한편, 에너지 기본소득 추진에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해상풍력이 없었다면 RE100 산업단지 조성이나 AI데이터센터 클러스터 조성 등은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김 지사가 해상풍력을 선점하고, 이슈를 리드한 것은 탁월했다는 것이다. 전남을 대한민국 에너지산업의 수도이자, 아시아·태평양 해상풍력 중심지로 전남을 도약시키겠다는 김 지사의 약속이 하나씩 실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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